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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에서 이어집니다. 8. '파리 교향곡'(Paris Symphonies)과 오라토리오 '가상칠언'(架上七言) 전술한 것처럼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가에 있는 동안 음악가로서 극진한 예우를 받으면서 궁정 내부에서는 마음껏 작품활동을 펼쳤으나, 고용계약서 상 악보와 공연의 저작권이 모두 '에스테르하지'가에 귀속된다는 조항 때문에, 또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던 '에스테르하지'가의 주인 '니콜라우스 1세' 의 끊임없는 음악적 주문을 소화해 내느라 자신의 음악을 대외적으로 알릴 시간과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더구나 '스테르하지'가의 궁정이 한적하고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외부 음악계는 '하이든' 음악의 작품성을 초기 몇 작품과 들리는 소문으로만 접할 수 있었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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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4. 부모에게 음악적 재능만 물려 받은 '하이든' '하이든'은 1732년 3월 31일 오스트리아 동쪽 국경 근처의 '로라우'(Rohrau)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즘도 인구가 1,600여명에 불과한 아주 작은 마을에서 마차 바퀴를 만들고 수리하는 일을 하는 가난한 아버지와 요리사 출신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12남매 중 둘째 아이자 장남으로 태어난 겁니다. 그의 교회 세례자 명부에는 4월 1일 세례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보니 그의 생일이 4월 1일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으나 하이든은 "내 생일이 만우절이라면 너무 끔찍한 일이죠. 내 생일은 3월 31일이 분명합니다"라는 얘기를 자주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732년은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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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바로크 시대의 거장, 비발디, 텔레만, 바흐, 헨델 4인의 삶과 음악을 정리하면서 당시 얽히고 설켜 있었던 유럽 각국 역사의 시대적 배경과 수많은 음악가들간의 다양한 에피소드 속에 깊숙이 빠져 있다 보니 마치 1600년대 중반부터 1700년대 중반까지의 서양 음악계 한복판에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한 우리의 기나긴 음악기행 속에서 우리는 어느덧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첫 이야기를 '하이든'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학교 음악시간에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에 대해 배운거라곤 '교향곡의 아버지', '놀람 교향곡'과 '장난감 교향곡'의 작곡가라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장난감 교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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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편에서 이어집니다. 8. 헨델의 어린시절 : 아버지의 반대 - '아돌프' 공의 후원 - 스승 '차코브'의 헌신 헨델은 독일 '할레(Halle)'에서 1685년 2월 23일, 이발사인 아버지, '게오르크 헨델'(Georg Händel, 당시 63세, 1622~1697)과 그의 재혼한 두번째 부인 '도로테아'(Dorothea)사이에서 늦둥이 아들로 태어난다. 헨델의 아버지는 독일 30년 전쟁 초기에 태어난 사람으로 산전수전 온갖 고생을 겪으며 살아 온 사람이라 자식들을 수입이 안정적이고 신분적으로도 대접받는 의사, 공무원, 법률가 등으로 키우기를 원했지 음악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헨델의 할아버지는 놋그릇 대장장이였고 외할아버지는 루터교회 목사였다. 가까운 조상 중에 음악을 하는 사람은 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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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부활절에는 전세계 수많은 교회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 중 합창곡 '할렐루야'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자리에서 기립합니다. 이처럼 수백년의 시공을 넘어 세계 방방곡곡에서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바로크 작곡가 '조지 프레드릭 헨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앞서 살펴 본 3인의 바로크 음악가들과 비교해서 그는 무슨 특색을 가지고 있는지. 바흐만큼이나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을까, 비발디처럼 오페라 작곡에 미쳤던 사람일까, 아니면 텔레만처럼 독일 음악계를 휘어 잡았던 사람일까. 헨델에 관한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의 캐릭터를 3D 프린팅 하듯 입체적으로 조명해 본다. 1. 헨델은 어느나라 작곡가? 우선, 독일에서 출생한 헨델이 그 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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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에서 이어지는 '바흐' 마지막편입니다. 9. 바이마르 궁정으로 복귀하여 '콘체르트 마이스터'로 승진하다 1708년 뮐하우젠을 떠난 바흐는 5년만에 다시 바이마르로 갑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거의 비정규직 악사가 아니라 바이마르의 통치자 '빌헬름 에른스트' 대공의 관현악단 오르가니스트로 정식 초청받은 것입니다. 바흐가 한 곳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작곡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부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빌헬름 에른스트' 대공은 20~30명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자신만의 오페라 하우스를 가지고 있는 음악 애호가였으며 독실한 루터파 기독교 신자로서 아마도 바흐의 음악 활동에 좋은 스폰서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흐는 이 곳에서 비발디, 코렐리 등이 출판한 악보를 통해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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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편에서 이어집니다. 5. 음악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나이 10살에 어머니 아버지를 잃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1685년 3월 21일 독일의 아이제나흐시에서 시음악장인 '요한 암브로시우스 바흐 (Johann Ambrosius Bach)'의 여덟째이자 막내 아들로 태어납니다. 당시 바흐의 가까운 친인척 중에는 음악가가 아닌 사람이 별로 없을정도로 전통적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것인데, 직계로는 바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2명의 친형이 작곡가였고 방계까지 따지면 큰할아버지, 당숙, 삼촌 등 모두 십수명의 작곡가 또는 연주자가 배출된 독일 최고의 음악 명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태어나는 바흐의 아들, 조카, 손자까지 합하면 바흐 성을 가진 당대 음악인 수는 20명이 훨씬 넘습니다. '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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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삶과 음악은 이미 '비발디'와 '텔레만' 편에서 상당부분 언급하면서 왔기 때문에 좀 쉽게 정리할 수 있으려니 했는데 막상 '바흐'편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어떤 이야기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바흐에 관해서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핵심내용을 추리기도 어려운데다, 당대에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던 그가 현대에 와서는 왜 수많은 작곡가를 제치고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지에 대해서는 나름 약간의 설명이라도 곁들여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을 느낍니다. 역시 수백년 클래식 음악사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을 몇페이지 글로 묘사하기는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님을 느낍니다. 1. 음악애호가들의 바흐에 대한 평가와 재미있는 분석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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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만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6. 라이프치히에서 폴란드 '조라우'로 - 음률에 글로벌한 색채를 입히다 텔레만은 어머니에게 법률공부와 음악활동의 병행을 허락 받은 이후, 사실상 법률공부는 집어치우고 모든 시간과 열정을 음악활동에 바친 것으로 보인다. 어떤 기록에서도 더이상 법학공부에 관한 기록은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시간이 흐르면서 라이프치히 시장과 당초 약속했던 두주일에 한곡을 써주는 정도에서 벗어나 본격적이고 다양한 작곡활동을 벌인 것으로 나타난다. '성 토마스' 교회 뿐 아니라 '니콜라이' 교회에도 성가곡을 써주기 시작했으며, 대학내 음악 동아리 '콜레기윰 무지쿰' (collegium musicum)을 결성해 당시엔 흔치 않은 일반 시민 대상 열린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그 다음해인 1702년부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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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작곡가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 (Georg Philipp Telemann). 아마 많은 분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가벼운 이름은 아니다. 바로크 시대를 대략 1600년부터 1770년까지로 본다면 이 기간 중 클래식 작곡가로 기록된 사람 수는 전 유럽에 모두 900명이 넘는데, 오늘날 동 시대의 대표 작곡가로 꼽히는 인물은 비발디를 비롯해 텔레만, 바흐, 헨델 등 몇사람에 불과하다. 약 300년이 흐른 뒤 그 시대의 대표 작곡가 4인의 한사람에 드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지만, 이들의 생존 당시 유럽 음악계에서의 저명도를 따져보면 텔레만이 바흐를 훨씬 압도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가 지금 깨어난다면 "어쩌다가 바흐가 나를 제치고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거지?"하고 고개를 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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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5. Virtuoso 비발디 - 베끼는 속도보다 작곡하는 속도가 빠르다? 비발디는 삐에따 보육원 바이올린 교수로 들어간 후 처음엔 원생들에게 음악 이론과 악기 사용법을 가르치는 정도였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작곡과 연주회 관리 등의 비중있는 업무가 추가로 주어지면서 연봉과 직위도 계속 올라가 1716년에는 연주감독(Maestro de Concerti)이 된다. 각종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 성가곡은 물론이고 협주곡, 독주곡 등 수많은 기악곡을 작곡하여 악보를 출판하고 끊임없이 무대에 올림으로써 바이올린 연주자에서 점차 작곡가로서의 새로운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비발디의 평생직장이었던 보육원의 일자리는 종신직이 아니라 1년 단위의 계약직이었는데 1709년에는 보육원 경영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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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로 유명한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그는 지금부터 300여년전 어떤 삶을 살다 갔을까. 오늘날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The Four Seasons, Le Quattro Stagioni)'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음악도 없을 것이다. 비발디의 '사계'는 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의 고전음악 선호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양한 상업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다. 구글에서 '비발디'를 검색하면 '비발디 파크' 같은 회사이름이 먼저 나올만큼 대중화된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척 친숙한 듯 한데 실제로는 아는게 별로 많지 않은 그의 삶과 음악을 정리해 본다. 1. 다작 작곡가 비발디의 음악에 대한 다양한 평가 비발디는 '사계'외에 알려진 곡이 거의 없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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