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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선

'니콜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기상곡) 24번'을 감상했는데요

 

오늘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곡의 주제를 기반으로 작곡한

24개 변주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R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Op.1~24) 중

18번 Andante Cantabile

를 감상합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873~1943)

광시곡(Rapsody)이란

광상곡 또는 환상곡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19세기와 20세기의 낭만주의적 영감으로 가득 찬

자유로운 형식의

단 악장 협주곡을 말합니다.

주로 기존의 주제(테마)를 사용합니다.

 

음악에서

주제(테마)라 함은

곡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특징적인 선율을 지칭합니다.

이러한 유명한 주제를 바탕으로

리듬과 멜로디에 변화를 가미해

새롭게 만든 곡을 변주곡(Variation)이라고 하죠.

 

'라흐마니노프'가

1934년

그의 나이 61세에 작곡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24곡

전체적으로는 협주곡의 

빠른, 느린, 빠른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각각의 곡은 24개의 변주로 된

피아노 독주나 관현악을 위한

작품입니다.

 

특히

그중 18번 변주,

'느리고 노래하듯' (Andante Cantabile)은

'파가니니' 주제의 멜로디를 

뒤집은 것입니다.

원래 가단조(A minor)인

파가니니 주제를

내림 라장조 (Db major)로  변환하고

멜로디 오르내림의

방향을 바꾼 것이죠.

 

'라흐마니노프' 자신도

이 변주 부분에 대해서는

대만족을 표시하면서

이 부분이 랩소디 전곡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는군요.

 

***

여기선

루빈스타인의

피아노 연주로 감상합니다.

 

 

***

 

(라흐마니노프의 삶과 음악)

러시아의

유복한 귀족 집안에 태어난

'라흐마니노프'는

유아기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17살에는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할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다고 합니다.

 

피아노 신동 라흐마니노프

하지만

너무 오만했던 것일까요.

24살에 작곡한

교향곡 제1번 D minor가

혹평을 받으면서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28살 때인 1901년엔

정신과 치료를 통해 증세가 

크게 호전되었고

이어서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호평을 받으면서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공산당 혁명세력간의 내전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

정상적인 음악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죠.

 

'라흐마니노프'는

그후

10년정도를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 독일, 영국, 미국 등으로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전주곡'과 연습곡,

'피아노 소나타 1, 2번,

교향곡 2번, 피아노 협주곡 3번 등

명곡을 잇달아 발표해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1945년

영국 영화 

'밀회' (Brief Encounter)에

OST로 삽입되면서

대중적으로 무척

유명한 노래가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1945)

 

(미국으로 먕명)

그러다가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에 의해

러시아가 완전 공산화 된 다음에는

미국으로 완전 이주를 결심합니다.

 

1909년

미국 투어를 할 때는

그다지 대 환영을 받지 못했으나

그 사이 인지도가 높아진

'라흐마니노프'는

미국 음악계로부터

아주 풍성한 대접을 받으며

뉴욕에 입성합니다.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작곡보다는

연주활동에 매진합니다.

이는 안전한 수입 확보를 위한 것으로

낯선 나라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과거 러시아에서 누렸던

풍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안되는 작곡보다

연주공연을 통한

흥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에서 활동한 25년간은

주로

다른 작곡가들의

'패러프레이즈' (Paraphrase)를

작곡하고 공연하는 일이

많습니다.

 

'패러프레이즈'는

원곡을 새로운 스타일로 바꿔서

자유롭게 연주하는 

일종의 편곡을 말합니다.

 

그가

가장 바빴던

1923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모두 70여건의 연주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소원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며

LA 비버리 힐즈에 

러시아 시절의 대저택을

그대로 본따서

새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는

간간히

작곡활동에도 시간을 투자,

피아노 협주곡 4번,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과

오늘 감상하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작곡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손)

'라흐마니노프'는

키도 198cm로 장신이지만

특히 손가락이 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손가락과 피아노 건반)

 

그의

손 뼘은 약 30cm로 길어서

왼손 새끼 손가락이 '도'를 누른채

엄지 손가락은 다음 옥타브의 '라'까지

닿았다고 합니다.

위 사진도 꽤 큰 손인데

엄지가 '솔'까지 밖에 안 오니

'라흐마니노프'의 손가락은

위 사진보다

2cm는 더 길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작곡한 곡들은

자신의 손가락에 맞게끔 되어 있고

웬만한 연주자들은

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작품을

다른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

그다지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그의 친구이자 음악동지였던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피아니스트,

'브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의

연주만은 완벽하다고

칭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자

그는

비버리힐즈에서 주로 지내다가

거기서 사망합니다.

러시아에

유골이 묻히길 소원했으나

미국인으로 귀화한 때문에

소원은 이뤄지지 못하고

뉴욕의

'켄시코 공원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묘소, 뉴욕 Kensico 공원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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