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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2월 12일

뉴욕 맨하탄의 음악당 '아이올리온 홀'에서는

당대의 쟁쟁한 음악가들,

라흐마니노프, 스트라빈스키, 크라이슬러 등

십수명의 작곡가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음악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 행사는

'현대음악의 실험'

(An Experiment in Modern Music)

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재즈왕'이라고 불렸던

'폴 화이트먼' (Paul Whiteman)이

저명인사들에 대한 클래식음악 교육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

전체 프로그램이 총 2부, 11섹션, 26곡의

방대한 분량인데다

공연장 환기시설도 좋지않은 상황이어서

아무리

유명한 작곡가들의 곡들이 연주되어도

행사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관객들은 점차 지루함을 이길 수 없었다.

이날

마지막 곡은

'엘가'의 저 유명한 '위풍당당 행진곡'이

예정되어 있었고

마지막 순서에서 두번째 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는데,

클라리넷이 길게 뽑는 고음의

'글리산도'(Glisando)가 울리면서

관객들은 다시 몰입하기 시작한다.

(주: 글리산도는 음과 음 사이를 끊이지 않고

미끄러지듯 단번에 끌어 올리는 주법)

이곡이 바로

주최자 '화이트먼'이

신예 작곡가 '거슈윈' 에게

특별히 작품을 의뢰해서

이날 초연하게 된

'랩소디 인 블루' (Rapsody in Blue)였다.

이 행사는

결과적으로

'거슈인'을 위한 행사가 되어 버렸고

그는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

 

조지 거슈윈(1898~1935)

'조지 거슈윈'

(George Gershwin, 1898~1935)은

젊어서 미국으로 이주해 온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불우한 천재였다.

우연찮게

어린 시절 약간의 음악공부를 하게 되지만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을 기회는 얻지 못한채

음반회사에서 일하면서

음악의 꿈을 키운다.

그의 음악적 소질을

한눈에 알아본 사람이 바로 '화이트먼'이었다.

'화이트먼'은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하는데 관심이 많았는데,

'거슈인'이 1922년

1막짜리 재즈 오페라로 만든

'블루 먼데이'를 눈여겨 보고

자신의 음악적 도전을 성취시켜줄 작곡가로

'거슈윈'을 지목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거슈윈'이 '랩소디 인 블루'를 만들 때만 해도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곡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그저 단순 멜로디만 넘겨줬을 뿐이고

오케스트라 부분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줬을만큼

그의 화성학 기초는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명작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건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암튼

'랩소디 인 블루'는

이런 콜라보를 통해 탄생한

최초의 '클래식 + 재즈' 벤처곡이다.

그 이후

'거슈윈'은

늦은 나이에 화성학을 새로 배웠고

"파리의 미국인',

오페라 '포기 엔 베스'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작곡가로 부상한다.

그러나

천재는 단명한 것인가.

1937년

뇌수술을 받다가

마흔을 채 넘기지 못한채

사망하고 만다.

소품이라고 하기엔

다소 긴 17~8분 정도의 작품인데

여기선 처음 5분 정도만 감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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